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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톱치다가 영계에 다녀온 이외수 - 벽오금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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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말에서 90년대 초, 이 시기에는 먹고 살 걱정이 줄어들면서 작은 경제적 풍요로움이, 사람들에게 심적인 여유를 가져다 주고 있었던 시기였던것 같다.

 

그래서 그랬던걸까, 이전 이후 그 어떤 때 보다도 정신적인 평화로움과 반물질적인 소재의 도서들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왔었고 독자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기도 했었다.

 

"단"의 김정빈이 그랬고 "벽오금학도"의 이외수가 또한 그랬었다.

 

아마도 당시 사회적 전반에 퍼지기 시작했었던 "뉴에이지"라는 시대적 조류도 그런 인기에 한 몫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김정빈의 "단"이 우학도인을 전면에 내세운 민족고유의 수련법에 대한 구도기적 체험소설이라면, 이외수의 "벽오금학도"는 작가의 무한한 도가적 상상력에 기댄 흥미로운 판타지 소설같은 느낌이 강하다.

 

주인공 강은백은 유유자적하며 선가(仙家)의 도를 쌓은 농월당 할아버지의 손자로, 유년시절에 신선의 마을인 ‘무영강’을 건너 ‘오학동’에 들어간 뒤 불과 며칠 만에 머리가 하얗게 센 채로 신선이 준 그림인 〈벽오금학도〉를 가지고 돌아온다. 무영강에서 솟아오르는 안개와 이무기의 전설 저편에서 속세와 단절된 채 존재하는 오학동은 대상에 대해 아름다움을 느끼면 곧바로 그 대상과 자아가 완전히 합일되는 ‘편재(遍在)’가 가능한 세계다. 그러나 강은백이 속세로 돌아와 청년이 되기까지 겪는 세계는 삶의 모든 조건이 철저한 이기심에 사로잡혀 쟁투와 파괴만이 심화되는 곳이다. 그는 “〈벽오금학도〉를 자유자재로 들고 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면 오학동으로 돌아오리라”라는 신선의 말에 따라 그 사람을 찾기 위해 세속을 방황한다 - YES24에서

 

한때는 장자와 노자같은 무위자연하고 반세속 지향의 성인들과 그들이 향유했었던 사상적 접근법에 대하여, 무조건적인 거부감을 상당히 많이 가지고 있었던 적이 있었다. 아마도 당시에는, 가까운 미래조차 예견할 수 없는 불안한 사회적 상황과 피하면 겁쟁이로 순응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직면한 정치적 현실앞에 모두가 나서서 투쟁하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던 시기였기에, 그들의 아주 오래전 생각들은 전혀 고려할만한 신념적 가치가 아니라고 당연히 여겼었다.

 

하지만, 그런 내 믿음의 도그마를 부질없게 깨부셔버리는데는 그다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성자가 된 청소부'와 같은 가볍게 읽으면서도 영적인 에너지를 가득 채울 수 있는 소담스런 책들...

노자와 장자로부터의, 마음을 비우고 행복하게 사는 방법에 대한 강의...

맑은 차 한잔 마시며 잠깐씩 듣는 뉴에이지 음악들...

 

이런 마음을 정갈시키는 집합체들이, 나의 몸과 정신을 숙주 삼을려고 작정한 그때...

난 이외수의 "벽오금학도"를 만나게 되었다.

동문선에서 나왔던 그 책은 표지 그림이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어쩌면 이외수라는 작가를 잘은 몰랐던 당시에, 내가 선뜻 그 책을 집어들게된 결정적 요인을 찾자면, 그 표지 그림이 아니었던가 싶다.

표지를 보는 이로 하여금, 돈을 내고 책을 사게 만드는 무슨 선계의 가공할만한 기공력이라도 숨겨져 있었던 것일까?

 

 

 

 

정말 안타깝게도,

요즘들어, 이외수라는 천부적 이야기꾼에 대하여 많은 소리들이 들리고 있다.

그의 정치적 소신을 바라보는 이쪽과 저쪽 사람들의 이러쿵 저러쿵한 소리들...

그의 개인적 가정사에 대한 이런 저런 소리들...

트위터를 지배하는 그의 SNS상의 파워에 대한 이런 저런 소리들...

 

이외수에 대한 그런 현상들을 접하노라면, 무척이나 안타깝고 마음이 그다지 유쾌하지 못하다.

 

 

이야기꾼 이외수는 고스톱치다가 잠시 영계에 다녀오기도 하고, 또 토크쇼에 출연해서 젓가락에 기를 모아 나무판자에 던져 꼽는 아크로바틱한 도술도 시연하는, 그런 기이하면서도 흥미가 있는 사람이다.

 

그에게서 객관식 사지선다형 문제의 꼭 하나뿐인 정답을 들을려고 하는, 학력고사 시대의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그는 그런 답을 절대 말해 줄 수 없다. 그는 열린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광인이고 기인이다.

 

시대의 아픔을 고통스럽게 겨우 이겨냈던 멀지 않은 과거의

어느날, 그 때 만났던 이야기꾼 이외수의 벽오금학도...

 

나는 이미 오래전 당신과 그 책으로 트친을 맺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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